정글 오디세이
오승경 기획 초대전
Jungle Odyssey
2024. 4. 16 - 4. 27
“사멸한 유토피아Utopia적 꿈의 세계, 그 잔해로부터 디스토피아Dystopia의 움울한 판타지와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현란한 유희가 출현한다.”
어느 유명한 평론가의 한국 근대 문학에 대한 간단명료한 진단이다. 이는 예술과 건축 등 공간과 관련한 철학 전반에 걸쳐 지탱해 온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헤테로토피아 개념 관련해 흔히 발견되는 선후관계규정이기도 하다. 마치 삼각대의 각 발처럼 어느 하나가 없으면 넘어질 듯이, 이들에 대한 기술은 너무나도 균형적이다. 하지만 가만 보면 그 발들의 길이는 같을지언정 그 강도나 굵기는 좀 다른 것 같다. 특히 “사회 안에 존재하면서 유토피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실제로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장소로서 다른 온갖 장소들에 이의 제기를 하고 그것들을 전도시키는 헤테로토피아”는 미셸 푸코의 지명을 받아 오늘날 너무나 건재한 공간 개념으로서 늘 결론 격으로 군림하고 있다. 즉 현대에 와서 많은 예술 작품들은 이 세 공간 개념 중 “실제로 위치를 한정할 수 있지만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들”인 헤테로토피아로 치환되는 양상이다. 그런데 어쩐지 좀 강박적인 해석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쩌면 얼른 결론을 내고 싶어 하는 우리네 마음의 정향이 문득 알게 된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가장 진보적이고 젊은 개념으로서 비교 우위에 둔 것 아닐까. 아무래도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가속화하고 <1984> 이후 사상적 임무를 마치고 시들해진 디스토피아를 넘어 변증법적 종착지로서 택하게 된 ‘포스트모던’풍의 단어일 테니 말이다.
따라서 현재 생존해있는 어떤 작가가 “실제 장소를 갖지 않는, 본질적으로 비현실적인 공간”으로서 유토피아의 양면성인 “그 자체로 완벽한 사회이거나, 사회에 반한다는 점”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유토피아를 표현하는 작가”라고 단언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오승경의 세계를 유행에 기대어 헤테로토피아로 규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리고 환영”이라는 제목으로 써내려간 작가 노트 중 다음 문단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내 작품의 대다수는 상상에서 기인한다. 내 작품들은 내가 상상하는 다양한 장소를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그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의 세계를 여행하며 현실과 연결할 수 있게끔 해주기도 한다.”
여기서 상상imagination은 환상phantasia와 함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프시케psyche’란 이름으로 내려온 공통 감각koine aisthesis의 일종이다. 그것은 예술적 창조에서 하나의 은유metaphor로서 세계와 교섭되는 도구이며, 스스로 그 교섭에 적합한 세계를 만들어 낸다.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이러한 영혼 또는 인식의 과정은 “인간이 유사한 것을 생산해내는 최고의 능력, 즉 ‘미메시스 능력Mimesis faculty’을 갖춘 존재”라는 전제로 ‘역사적 변천 과정’을 통해 언어와 문자 중심의 매체를 발전시켰으며, 이는 관념이 아닌 지각이 중심이 되는 인식론을 상정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언어와 문자” 속에서도 그 보편적 구체성의 획득에 있어 위계hierarchy가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고, 그 대표적인 예로 ‘유토피아’의 이미지가 보편적으로 ‘태고의 자연’에 가깝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소망된 ‘기술적 무장’의 이미지도 있었다. 이에 대해 강수미의 <아이스테시스>의 한 문구 “새로운 자연에는 새로운 이미지가 대응”한다는 진단은 ‘기술적 무장’ 이미지의 출현과 도태를 동시에 은유하는 간명한 언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것은 “그 기술을 제대로 수용할 준비가 되지 않은 ‘집단적 착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표적인 벤야민 연구자인 수잔 벅모스Susan Buck-Morss가 <꿈의 세계와 파국Dreamworld and Catastrophe>에서 역설한 바와 같이 “모더니티의 파국적 결과들은 그 꿈이 표상하고자 했던 민주적 희망, 유토피아적 희망의 이름으로 비판될 필요가 있다.”는 정치적 기술까지 인용하는 것이 지나치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형성되었던 새로운 유토피아의 이미지는 디스토피아라는 반대 개념을 낳으며 스스로 사멸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벤야민의 역사철학이 파국과 위기, 메시아적 구원을 강조하고 진보 이론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 철학이 ‘반(反)유토피아주의’로 볼 수는 없다.”는 강수미의 진단처럼 유토피아라는 ‘언어’는 사멸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변증법의 끝은 기계적인 헤테로토피아의 적용이 아니라 태고의 유토피아에 대한 보편 이미지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오승경이 주로 작업의 근간으로 삼는 유토피아의 이미지는 문자 중심의 언어에 상응하는 ‘유사성’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층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나의 작업은 ‘비감각적 유사성’ 이전의 미메시스 능력이 지향하는 자연에 대한 태도, 즉 무언가를 곧바로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아이시테시스로서 로고스에 앞서는 ‘읽기 능력’이다. 그것은 태초의 인간들이 별, 동물, 우연한 사건들을 마법적으로 읽은 객관적이며 시각적인 매체로서 그림이 어떤 상상의 작용에 기인하고 또한 돕는지를 잘 보여준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불편한 동거가 아닌 진정한 자유와 탈출 지향으로서 더욱 넓은 터전을 가지고 기능하기 때문이다. “미메시스의 내재적인 목표는 미메시스 주체를 미메시스의 강압으로부터 해방하는 데 있다. 이로 인해 미메시스는 모방과 재현을 넘어 ‘표현’의 차원을 구현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오형엽의 논문「발터 벤야민의 언어철학 고찰 – 미메시스 개념을 중심으로」(2009) 속 한 문장이 위 평론에 적확하게 맥을 같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아리스토텔레스로 돌아가자. “모든 고등한 사유는 환영phantasm(이미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환영’은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관념인 이데아Idea와 대척점에 서 있는 예술론이다. 재밌는 사실은 이 두 용어 모두 ‘감각’에 상반되는 ‘지각’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한 매우 ‘시각적’인 용어이며, ‘시각적’이라는 것 자체가 우선 ‘감각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현실을 유토피아적으로 인식하려 하는 헤테로토피아적 결론에 종속되지 않고 어딘가에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유토피아적인 모습을 찾아 환영을 입히는 ‘유토피아의 미메시스’에 천착해온 오승경의 주관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며, 감상자들에게 편안한 공통 감각을 제공한다고 하겠다.
-배민영(예술평론가)
오승경
Seungkyung Oh
학력
2018 Parsons School of Design, Fine Arts 석사 졸업 [뉴욕/미국]
2016 School of Visual Arts, Fine Arts 학사 졸업 [뉴욕/미국]
개인전
2024 Jungle Odyssey, 스페이스 결 [서울/한국]
2022 Kayaking Through A Rainbow, 갤러리 월해 [서울/한국]
2022 Utopia : Hybrid, 군포시의회 [군포/한국]
2022 I want to be a flower, 스페이스 결 [서울/한국]
2021 Toxic Serendipity, SVA서초갤러리 [서울/한국]
2021 Mimesis of Utopia, 사이아트갤러리 [서울/한국]
2020 Other Wilds, IPG BOX [서울/한국]
2019 Into the Deep, 갤러리 도스 [서울/한국]
2019 I Dreamt Under the Sun, Love Henry Gallery [뉴욕/미국]
2017 Bitter Sweet Dreams, IBM Bluewolf 사옥 [뉴욕/미국]
주요 단체전
2022 스페이스결 신진작가공모전 [서울/한국]
2021 Search.21, 에코락갤러리 [고양/한국]
2021 도시의 우리, 서울시청 하늘광장 갤러리 [서울/한국]
2020 Designed Abstraction, ADM Gallery [서울/한국]
2020 POP-UP STUDIO, 가로골목 [서울/한국]
2020 Apocalyptic, Maryland Art Place [메릴랜드/미국]
2020 Color Flex, 피카디리 국제 미술관 [서울/한국]
2019 KPAM 대한민국미술제, 예술의전당 [서울/한국]
2019 Body, Site: Brooklyn Gallery [뉴욕/미국]
2019 Contemporary Sculpture, Site: Brooklyn Gallery [뉴욕/미국]
2019 Art Teleported, 100 Bogart St [뉴욕/미국]
2019 Objectified, CICA 미술관 [김포/한국]
2018 Landscape: Real and Imagined, Site: Brooklyn Gallery [뉴욕/미국]
2018 Trestle Gallery Residency Group Exhibition [뉴욕/미국]
2018 Newark Art Festival [뉴저지/미국]
2018 PSOS18 Show, Clemente Art Center [뉴욕/미국]
2018 Transplanted, University of Montana Exhibition [몬타나/미국]
2018 RESISTANCE, Jersey City Theater Center [뉴저지/미국]
2018 Ink, Press, Repeat: National Juried Printmaking Exhibition, William Paterson University [뉴저지/미국]
2018 Design for a Billion, IIT [구자라트/인도]
2017 Hidden Space, 25 E Gallery [뉴욕/미국]
2016 One Earth, One Consciousness, Bronx Art Space [뉴욕/미국]
2016 Artist/Printer, SVA Chelsea Gallery [뉴욕/미국]
2016 Cross-Cultural Dialogue:Sino-American young Artist Exhibition, Javits Center [뉴욕/미국]
2015 Color Flow, SVA Flatiron Gallery [뉴욕/미국]
레지던시
2019 Hambidge Art Center Artist Residency [조지아/미국]
2018 Brooklyn Trestle Gallery Artist Residency [뉴욕/미국]
출판
2023 TRAIL GUIDE vol.01 [한국]
2022 미술세계 8월호 [한국]
2020 CICA Press Posthuman : New Media Art 2020 [한국]
2018 Chaleur Magazine Dec (V.I.I.IX) [미국]
2018 Sonder Midwest Issue 2 [미국]
2018 Ponder Review 2.2 Mississippi University for Women Press [미국]
2018 Genre: Urban Arts No.5 [미국]
2018 Genre: Urban Arts No.4 [미국]
2018 Ink, Press, Repeat: National Juried Printmaking and Book Art [미국]
2018 Studio Visit Magazine Volume 42 [미국]
수상
2019 North Georgia Distinguished Fellowship [조지아/미국]
2019 대한민국 모던아트대상전 금상 [서울/한국]
2018 Art Scene Today Competition 파이널리스트 [뉴욕/미국]
2018 Wave Hill Botanical Garden Sunroom Project 파이널리스트 [뉴욕/미국]
2018 University of Montana 작품 공모전 3위 [몬타나/미국]
2017 IBM Bluewolf 선정작가 [뉴욕/미국]
2014 대한민국 현대여성미술대전 서양화 부문 특선 [서울/한국]
2014 대한민국 여성미술대전 서양화 부문 특선 [서울/한국]
2013 대한민국 회화대전 서양화 부문 특선 [서울/한국]